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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장손이 할아버지 무덤을 삽으로 두드리며 파묘를 고한다. 장손들에게만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이 묫바람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 과도한 공포조성을 위해 화면과 음향이 시작부터 눈의 피로도를 높였다. 젊은이들은 아직 오컬트적인 영화에 호기심이 많지만 한 갑자 언저리를 살고 보니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에 공감한 지 오래다. 북한땅이 보이는 백두대간의 허리춤. 여우가 호랑이 허리를 끊었다며 쇠말뚝이 등장한다. 일제시대 쇠말뚝의 99%는 좌표로 인정하지만 나머지 1% 쇠말뚝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한 것이란다. 무덤가에 여우 때가 나온다. 호랑이가 고작 여우 몇 마리에게 허리가 끊기면? 종이호랑이라는 말인가? 일본의 쇼군이 장손의 몸에 빙의되어 북으로 전진을 하자며 손을 쭉 뻗는다..

집단독백

식사를 끝내고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1. 운전을 하면서 내 차선을 파고드는 옆차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저 차는 남의 차선을 파고 도네. 운전매너 불량이구만...!! 2. 뒷좌석에 앉은 딸 1 "이 땡땡 공인중개사는 언제 생겼지? 사무소 외관이 파란색이라서 오늘 처음 알았네." 3. 옆에 앉은 딸 2 "빨리 집에 가서 수리(햄스터) 집 청소해야지." 서로의 말을 듣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집단독백'의 시간이다. 요즘 카카오톡이나 단톡방 인터넷에서 많이 보는 현상이 실 생활에서도 나타나다니...!! 디시인사이드에서 말하는 벽갤, 혼잣말 갤러리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유튜브에 술 취한 400명의 집단 독백이란 tag가 달린 영상이 올라왔다. 남자의 취미에 ..

로맨스스캠

아침 일찍 study band에서 톡이 왔다. 멀끔한 프로필사진에 이찬우라는 이름으로 인사를 한다. 내 인상이 좋다고...!! 묻는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과한 칭찬과 동문서답에 반말이다. 본인은 미육군 고위직 장교로 38년간 근무하여 곧 은퇴를 앞두었다고. 군인이 전역을 해야지 연예인처럼 은퇴한다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초면에 반말까지 하는 걸 보며 기분이 싸했다. 군복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레바논에서 6년간 명예로운 임무를 수행하였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은퇴 후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말과 더불어...!! '나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할 일도 많고 시간도 없으니 양해 바랍니다.'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스터디 톡방에 내용을 캡처해 올리자 운영진으로부터 로맨스스캠이라는 답글이 ..

내려놓기

딸이 보고 있는 책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자 (파란 눈의 스님) 나티코 [내려놓기는 어쩌면 제가 배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일 겁니다. 내려놓기의 지혜는 참으로 심오합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얻는 것은 끝이 없지요.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생각이 결국엔 우리에게 가장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들여다보길 바랍니다.] 무릎을 탁 쳤다. 상대에게 바라는 것과 상대가 내게 바라는 것의 불일치...!! 우리는 서로 아니라고 하면서 모두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령사

나로가 엎드렸다. 바닥에 턱을 괴고 땅의 숨소리를 듣는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려 담장 타기를 못해서인지 제 집 옆에 붙여둔 방풍벽지를 죄다 긁어놓았다. 모처럼 해를 만나 반가운 것일까? 데굴데굴 구르고 문지르며 신이 났다. 겨울나기를 한 마당 대파에게도 앙상한 모란에게도 인사를 한다. 옆집 마당 산수유가 노랑물을 들였는지 뒷집 감나무가 초록물을 긷는지 먼 길을 이기고 돌아와 눈 비비는 그들에게 담장을 따라가며 봄을 알린다. 콧수염에, 온 몸에 봄 바람을 묻혀온 나로가 어쩌면 봄의 전령사가 아닐까?

도전

이번이 세 번째다. 나에게 그곳의 기억은 불편하기만 하다.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이 어려워 이런저런 핑계로 이유를 늘어놓고 애써 외면해 왔던 곳이다. 어느 날 티스토리 정보를 보고 슬쩍 흘린 말을 딸이 들었는지...! 나를 그곳 앞에 다시 세워놓았다. 나이 쉰 끝자락에 돌아서면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마음만 앞선다. 입구도 하나이고 출구도 하나인데 뒷걸음질 치며 반칙할 수도 없고 담장을 넘을수도 없다. 들어온 이상 남은 방법은 오직 정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것 뿐이다. 삼세판 중 한판은 뒤집어야 할 것 같은데.. 돋보기 너머로 흔들리는 건 글자가 아니라 바로 의지다. 모르겠다. 일단 " 도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

스크린

남구서구 지회 스크린골프 대회가 있었다. 추울 때 스크린골프는 멋진 놀이공간이지만 공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기절하는 먼지는 적응하기 어렵다. 잠시만 마스크를 벗어도 코안이 따갑고 목소리가 변한다. 언젠가 영상으로 본 스크린골프장의 미세먼지 오염실태가 머릿속에 남아있다. 겨우내 모셔둔 클럽을 들고 나왔으니 공이 안 맞는 건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대회모드는 난도가 높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웃고 떠드는 사이 받아 든 성적표는 마늘 한 접. "지고자 하면 이길 것이요. 이기고자 하면 질 것이다." 대회라는 말에 연습 없는 욕심을 부렸으니 누구를 탓하랴.

위험

사흘째 촉촉한 비가 내렸다. 쌀쌀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시샘 많은 꽃샘추위가 따라붙었다. 춘풍을 타고 온 대지의 속살거림에 실눈을 뜨자마자 기합이다. 영락없이 고드름을 달게 생겼다. 엄동설한 폭풍한파를 겨우 넘겼는데 진눈깨비 눈발이 웬일인가. 니체는 말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처음의 자동차보다 용케 피하고 안도할 때 따라오는 두 번째 자동차라고....!! 무장해제 시켜놓고 갑자기 수은주 뚝 떨어뜨리는 꽃샘추위가 가장 위험한 바로 그때인 것 같다.

피마자 나물

엄마가 마련해 주신 아주까리 잎이다. 5월 이전에 나온 보드라운 잎을 찜솥에 쪄서 말린 것이다. 마른 잎을 한 장씩 부서지지 않도록 차곡차곡 상자에 보관해 둔 것을 일전에 주셨다. 지금까지는 다 만들어놓은 나물무침을 갖고 와서 먹기만 하였는데...!!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에 잘 어울린다며 이번에는 직접 만들어 보라고 한다. 《피마자나물무침》 1. 말린 잎을 푹 잠기도록 물을 붓고 푹 삶는다. 2. 3ㅡ4 시간 물에 담가 묵은 향을 우려낸다. (피마자씨앗에는 리신이라는 독이 있음/ 피마자유는 머리에 바르거나 공업용 기름으로 사용됨 ) 3. 여러 차례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꼭 짜낸다. 4. 참기름과 마늘 다진 것을 넉넉히 넣고 참치액젓이나 구운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양념이 베어 들도록 충분히 무친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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