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84

수컷

구피삼매경에 빠졌다. 이사 선물로 엄마가 주신 항아리뚜껑 속에 2년째 살고 있는 구피들...! 볼품없는 암컷에 비해 수컷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듯 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우아하게 유영한다. 수컷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크고 두 마리는 작다. 생긴 모양새가 흡사한걸 보니 큰 것의 새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놈이 작은 수컷 두 마리만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아마도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수컷의 본능이 자신의 새끼조차 경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 고작 2-3센티 불과한 어항 속 물고기도 수컷의 본능에 이리도 충실한데...! 일가족이 무리 지어 생활하는 몽골 유목민은 근친상간으로 발생하는 유전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아내를 손님에게 내주는 풍습이 있다. 침실과 아내를 송두리째 내주고 다른 수컷의 자..

코냥이

일과를 마치고 헌관으로 들어서자. 나로가 다가왔다. 손을 내밀자 손가락사이에 코를 박고 떨어지지 않는다. 녀석의 코검색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샅샅이 검색중이다. 생후 1년 9개월의 모든 데이터를 총동원시켜 찾으려는 정보는 무엇일까? 가방을 내려놓자 또 가방에 코를 파묻는다. 이따금씩 콧수염을 쫑긋거리며 분홍코를 샐룩거린다. 공항검색대의 마약탐지견처럼...!! 오늘 녀석이 발견한 정체불명의 냄새는 도대체 무엇일까? 잠시 시간을 되돌려보니 바로 그것이다. 손님이 사 온 마늘 버터빵...!! 이 자식 너 개코구나?

no

한때 이런 광고가 있었다. '모두 yes라고 할 때 no라고 하는 사람' 마치 그 한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인 듯 보는 이의 무의식에 새겨졌다. 586세대가 최루탄가스를 피해 도심 구석구석으로 바퀴벌레처럼 흩어지던 그때. 시대적 변화를 바꿔보겠다는 거창한 의지는 기성세대들이 수긍하고 일궈놓은 토대를 뒤집는 것이었다. 더 근사하고 합리적인 답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적 사명을 읊었다. 21세기를 향해가는 지금 목청만 돋우던 586 학생운동은 민주라는 허울이 남긴 혹병이 되어 국가가 부담해야 할 리스크만 남겼다. 각자 먹고사는 일에 전력질주할 때 시대적 이권카르텔과 맞물린 몇몇은 특정단체의 완장을 차고 상상을 초월하는 국가부채를 떠넘겼다. 586 구캐의원들이나 배 고프다고 제 다리를 잘라먹는 문어나 ..

명품백

돌아오는 길. 치킨과 떡국, 밥꽃을 담은 검정 비닐봉지가 환한 불빛 아래 두드러졌다. 20대에는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내용물이 무엇이건 간에 비닐봉지를 들고 차를 탄다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마치 세상 사람들 눈에 나보다 봉지가 더 크게 보일까 봐 창피함이 앞섰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생전처음으로 칠곡 운암역에 내렸다. 마침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1번 출구 앞에서 만나 운암지로 향하는 길.! 운암역 앞의 상권은 제법 활기차다. 운암지는 함지산 아래 조성된 대구 8경 중 3 경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되어 현재는 칠곡인근의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새롭게 조성된 운암수변공원은 생태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고 구암고분군과 팔거산성을 이웃하고 있다. 160미터의 데크로드를 따라 팔각정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육식이야기

진즉에 사놓았던 벨기에출신 베르나르키리니의 소설 '육식이야기'이다. 이 작가의 소설은 현실과 괴리가 일부 있으나 흥미와 상상력으로 프랑스권 보카시옹상을 수상하고 그 외에도 유수의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였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강한 의구심을 남기게 하는 식충식물인 파리지옥의 음험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희귀 식물학자 라투렐은 식물의 파괴적인 힘에 흥미를 느낀다. 잎사귀들 사이로 흐르는 생명 속의 죽음을....! 예를 들면 중독되면 공수병에 걸린 짐승처럼 침을 질질 흘리게 되는 독성물질 아코니틴으로 꽉 찬 미나리아재비과 식물 투구꽃이나 부패한 음식처럼 위장을 다 뒤집어 놓는 솔라눔니그룸 성분의 까마종이 등등 물론 벌레잡이 통풀, 끈끈이주걱, 사라세니아 등 식충식물이 애벌레, 쥐며느리,..

사치

저녁식사로 닭다리 참숯구이 두 개...!! 여러 조각으로 나눠 머스터드 소스에 찍어 먹었다. 참숯향이 베인 육질이 기름기와 풍미를 더하며 입안에 퍼졌다. 애피타이저로 생밤 여섯알을 이미 먹었다. 오도독거리는 식감과 적당한 단맛이 좋다. 베니하루카 군고구마로 최강의 꿀맛을 다시 선사하고 소화촉진을 위해 그린키위 반개를 더 먹었다. 마지막으로 유기농 국화차를 마셨다.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이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삶에 있어 쾌락을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도달한 정점이 만족이라는 사치였다. 그는 작은 정원과 나무 몇 그루, 약간의 치즈와 친구서너명...!! 그것만으로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친구

초등친구의 딸 결혼식이다. 상견례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진 아내 때문에 마음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쉰 중반에 찾아온 뇌출혈은 회복도 되기 전 재출혈로 이어졌고 두어 달은 의식불명으로 또 두어 달은 주렁주렁 연결선을 꽂고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아내자리의 공백으로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고 간병 부담까지 가중되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친구에게도 안면마비가 나타나 온 가족이 비상사태였다. 사회자가 신부입장이라고 하였지만 신부는 대기선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아내는 휠체어에 앉아 축하와 문병을 받을 수 있었다. 웃음을 잃어버렸지만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다. 특히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올릴 때....!! 진심으로 친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다 나았네."

표현

날씨가 추워지면서 현관생활을 하던 나로가 모래통을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따뜻한 바닥에 뒹굴기도 좋고 간식까지 먹게 되니 최적의 환경이다. 녀석은 귀여움으로 영역확장을 하여 이젠 딸 방 서랍 위까지 제 방석을 깔았다. 점점 도끼눈이 되는 나와는 아랑곳없이 청소기만 들면 부리나케 이불속으로 골인이다. 게다가 오늘은 내 침대까지...!! . 놀란 나머지 나로를 바로 방바닥으로 밀어버렸다. 제 털이 민폐인줄도 모르고 굴러 떨어진 나로!! 니체가 말했다. 자기표현이란? 자기의 힘을 표출하는 방법이라고...!! 첫째 베푼다. 둘째 비난한다. 셋째 부순다. 상대에게 사랑과 자애를 베푸는 것도 힘의 표현이고 비방하고 괴롭히고 무시하는 것도 힘의 표현이다. 나는 셋째를 선택하였으나 녀석은 여전히 북어포 하나에 만족하며..

나도

소속해 있는 모임에 입회를 위해 2편의 수필이 올라왔다. '나의 전성시대' 어린 시절 판검사를 꿈꾸며 웅변으로 군소재지를 쩌렁쩌렁하게 했던 친구의 이야기다. 판검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시군구의원에서 정미소 경영자가 되기까지... 쪼그라들어가는 그의 잘 나가던 꿈이 자식으로, 가장으로, 남편으로서... 안주하기까지 무수히 비워낸 술잔들....!! 취기가 오르면 세상이 동전닢만하다가 깨고 나면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던 그 때. 술기운이 사라져도 주눅들지 않고 그득 그득 차오르던 알 수 없는 충만의 날들...!! 슬리퍼에 헐렁한 티셔츠 하나 주머니에 든 것이라곤 회수권 두어 장뿐이어도 세상 부러운 것이 없던 그런 날이 있었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사람이었어....! 과나의 노랫가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선물

아닛? 사무실 출근을 하니 노란 택배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문한 적도 없고 보낼만한 사람도 없는데...!! 보낸 사람.. 카카오 받는 사람 최땡땡 얼마 전 티스토리에서 실시한 댓글이벤트의 결과물이다. 탁상달력 볼펜 다이어리 카카오스티커 메모지... 1년을 시작하는 설렘에 부족함이 없다. 벌써 1월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것만 빼면.... 정말 신나는 티스토리 얏호~~~~ 얏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