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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오늘은 사무실 패밀리들과 홍합밥을 먹으러 갔다. 서영 홍합밥. 대기번호 19번을 받고 마당에서 기다리는 손님들과 봄볕을 쬐었다. 겨울이 있었을까 싶은 넝쿨식물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문간채 위에 자리를 틀었다. 시간을 때우러 대문을 나서자 바로 김원일 소설 속의 이 보였다. 젊은 여성이 해설가의 말에 귀를 대고 열심히 소설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작가는 이 소설이 사실에 기초하였지만 3~4할은 허구임을 고백하였다. 참말로 이 세상은 한으로 첩첩산을 이룬 더러운 세월이라. 꽃 같은 나이, 피기도 전에 모가지 자르는 더러운 세월인기라…… 그래 죽고 나도 울어줄 사람은 같이 일하던 기생 멫뿐이니, 일거리도 없는 참에 저녁 묵고 가서 그 불쌍한 넋이나 달래주고 실컷 울어주고 와야겠다. 분단 직후의 성장소설로 독자들..

편지

이쁜 꽃봉투가 보이며 교보문고가 뉴스에 나왔다. 교보문고 측에서는 어떤 손님이 아무 말 없이 계산대에 두고 간 것을 고객 분실물로 분류하여 보관하여 왔다고 한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채로 분실물 보관 기간이 경과하여 열어보니. 봉투 안에는 5만 원권 20장과 함께 손으로 정성 들여 쓴 편지가 한 장 들어있었다고 한다. 편지에는 15년 전 학창 시절 책냄새가 좋아 서점에 자주 방문하였는데 철없는 마음에 몰래 갖고 간 책과 문구들이 부모가 되면서 양심의 짐이 되어 사죄와 함께 책값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 책도둑은 단순 절도를 넘어 지식재산권 침해에 해당되는 범죄다. 요즘 아이들 있는 집은 개별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지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육성회에서..

산실청

겨울 내내 잠잠하던 구피들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곧 새끼를 낳을 모양이다. 작은 뚝배기에 산실청을 만들었다. 지난번에 새끼와 어미를 떼어놓는 것이 애처로워 그대로 두었다가 새끼 3마리가 제 어미 입속으로 사라지는 낭패를 보았다. 새끼 구출 작전을 세웠다. 고구마줄기와 소라껍데기를 넣어둔 뒤 얼마쯤 지났을까. 바닥에 떨어진 마른 멸치 한 마리? 그것은 바로 출산을 앞둔 어미구피였다. 자기만의 방이 생겨서일까...!! 산실청이 맘에 들어서일까...!! 솟구쳐 뛰어오를 만큼 좋은 이유는 알겠지만 그곳이 죽을 만큼 좋을 수는 없다. 혹시나 하여 축 늘어진 구피를 어항에 넣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배를 뒤집지 않는 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어제 배운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항아리 뚜..

자연의 법칙

아파트를 짓는다는 이유로 주변의 다가구 주택 수십 채가 철거되었다. 남겨진 주택은 사라진 것에 비례하여 임대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공급부족은 가격조정도 없이 계약이 되고 건물주들은 입주민을 고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건전한 사람인지, 직업은 안정적인지 꼬치꼬치 캐묻곤 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임대료는 종전가보다 30% 더 올랐다. 장바구니 물가도 치솟는데 임대료까지 오르니 세입자에겐 시름이 늘고 임대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시간은 지나면서 아파트 완공으로 입주시기가 되었다. 신학기가 지났는데도 공실 사이트에 올라온 빈 방의 수는 여느 때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시장의 이동현상이다. 하느님 위에 있다는 건물주들의 사무실 방문이 잦아졌다. 집값의 절반은 근저당되어 있고 그중 20%는 전세입자이고 보니..

하루

가족 톡방으로 배달 오는 아침편지다. ♡하루의 삶♡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어찌 보면 하루씩 사는 것이다. 하루만큼의 아픔과 기쁨을 느끼고 하루만큼의 걱정과 즐거움을 누린다. 하루만큼의 근심과 감사함을 만나고 하루만큼의 고통과 행복으로 채워간다 인생은 하루씩의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일이다. 끝 어제와 오늘을 나눠 조각을 내놓고서야 일상이 정리가 된다. 내일은 내일의 일들이 순서대로 기다리고 있다. 보일러 고쳐주기 회원명부 프린터하기 현수막 챙기기 회기 챙기기 문학기행 일정표 출력하기 티타임 준비하기. 심폐소생술 교육준비하기 내일 일정이지만 혹여 잊어버릴까 봐 기록하는 것이다. 중간 과제물을 하느라 머리가 아프고 눈알이 시리다. 밀리과제물과 인강은 다음날로 패스. 하루하루가 완주 스탬프 찍듯이 바쁘게 돌아간..

복권

모처럼 장기동을 지나며 새로 들어선 빌딩숲을 보았다. 집값이 하락세로 접어든 시기에 높은 분양가에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마치 첨탑처럼 솟은 고층아파트가 한숨으로 무너질리는 없겠지만 쓰러지면 받아줄 주변도 보이지 않는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한눈에 들어오는 복권명당. 31번째 1등 당첨이 되었다는 그곳에는 대박의 희망을 품고 열너댓 명이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예전에는 주택복권도 인기가 대단했는데 요즘은 집을 많이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는 복잡한 구조로 당첨금이 바뀌었다. 내가 아는 그 남자의 지갑에도 복권이 들어있다. 5등 당첨조차 별로 된 적 없지만 늘 치킨 한 마리 값을 복권으로 바꾸어 놓는다. 누군가는 이들의 변함없는 이바지로 집을 사고, 차를 사고 횡재의 기쁨..

야옹

고양이는 귀여운데 털은 정말 괴롭다. 고양이는 털이 정말 많이 빠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털옷을 입고 있으니 털 빠짐은 당연하지만 고양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털이 많이 빠지는지...!! 털 때문에 고양이를 유기하거나 다른 집으로 보낸다. 고양이털은 쓰임도 없다. 밍크나 호랑이나 어지간한 동물의 털은 나름대로 쓰임이라도 있지만 고양이털은 가장 비효율이다. 콧구멍이나 간질이고 알레르기나 유발하고 영양가라고는 조금도 없다. 고양이털에 대한 TIP을 얻을까 하여 인터넷을 뒤져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건강한 먹이로 탈모를 예방하고 열심히 빗질을 하여 털을 관리하고 사람이 좀 더 부지런해지란다. 이제는 걸핏하면 안고 둥기둥기하는 딸아이의 옷에 털까지 떼야하니 때아닌 시집살이다. 까만 눈동자를 보면..

대답

차을 타고 이동하던 중 친구가 거래처 직원과 통화를 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예 ~~~~ 예. 잘 알겠습니다." 예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때로는 짧게 때로는 길게...!! 첫 번째 예를 길게 할 땐 더욱 친절하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같이 대답을 했다. 낮은 톤으로 힘 있게 '예\ 알겠습니다.' 듣고 있을 때도 '예ㅡ.' 한 마디로 끝냈다. 친구는 실제로도 성품이 온순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대단하다. 두어 해 전 함께 일을 하던 직원은 지나치게 많은 예를 사용하였다. "예~ 예 예 예" 반복되는 4음절은 그녀의 습관적 배려심의 발로다. 오래된 종교적 마음수양으로 양보와 겸손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친절한 00 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단호히 응대해야 ..

군고구마

올해 마지막이다. 상자에 담긴 고구마 5개를 에어프라이기에 넣었다. 230도에 25분 이름처럼 꿀맛이 난다. 꿀맛고구마는 같은 품종이라도 가을에 갓 수확한 것과 일정기간 숙성을 거친 것과는 맛이 다르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고구마 농사가 그나마 수월하다. 특별히 비료를 하지 않아도 되고 농약도 치지 않는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고구마는 가성비 좋은 농산물 중 으뜸이다. 당근고구마, 호박고구마, 자색고구마 등등 맛과 색도 다르고 영양성분도 탁월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고구마위원회'의 코델박사는 " 하루에 고구마 한 개씩을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 "라고 했다. 고구마에 함유된 베타카로틴과 강글리오사이드( ganglioside)로 인한 항암효과도 좋지만 강력한 항산화 물질인 클로로겐산과 폴리페놀류..

냉이국

동생이 들고 온 냉이 한 봉지. 꽃대 올라오기 전에 냉잇국 끓여 먹으라고 엄마가 보내주었다. 엄마가 끓여주는 냉잇국에는 봄 무의 시원함과 파란 냉이에 생콩가루가 더해져 초록색 국물에서 시원하고 상큼한 봄맛이 난다. 몇 번을 따라 해도 잊어버리는 엄마의 냉잇국 레시피 이 참에 제대로 정리해 본다. [냉잇국] 1. 냉이겉잎을 떼어내고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담는다. 2. 물을 자작하게 붓고 볶은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한다. 3. 무를 굵게 채 썰기한 후 물에 넣는다.. 4. 물기가 빠진 냉이를 생콩가루가 담긴 비닐팩에 넣고 공기를 넣어 흔든다. 5. 콩가루가 묻은 냉이를 물에 뜬 무위에 고이 올려놓고 끓인다. 7. 끓기 시작하면 콩가루로 인해 끓어 넘치게 되니 넘치기 전에 여분의 생수를 두른 후 한소끔 더 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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