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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수영을 하기 시작할 때 수영교복을 샀다. 수모부터 물안경 수영복까지 모두 깜장이다. 한 달쯤 지났을까. 흰 모자에 보라색 수영복을 샀다. 두 달이 지나고 평형을 배우기 전 4부 길이의 수영복을 주문해 둔 상태다. 젊은 여자들의 몸은 호리병처럼 이쁘지만 중년이상은 대체적으로 핫도그처럼 자유분방하다. 운동을 마치고 사우나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갔을 때다. 수영복 입은 60대 남성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입을 꼭 다물고 속 웃음을 터트렸다. 대기하고 있던 여자들도 웃음을 머금고 있다. 마치 "보셨죠 "라고 말하는 듯 무언의 눈빛이 오고 갔다. 엉덩이 절반쯤에 걸쳐진 손바닥만 한 형광색 초록 미니 수영복은 보는 나도 민망했다. 수영장 초급반 남성은 보통 검은색 반바지 수영복을 입고 상급이나 연수반은 형광색 ..

사무실 출근하자마자 쇼핑백을 정리했다. 어제 대구수필문학회 43집 출판기념회를 끝으로 2년간 맡아왔던 사무국장의 소임을 마친 거나 다름없다. 다음 회기의 사무국장에게 보낼 짐정리에 들어갔다. 셀프카페에 필요한 커피포트와 종이컵, 42년의 역사자료 요약집 회기, 현수막, 선물세트 기타 등등 5개의 보따리가 만들어졌다. 마치 수업도 끝나기 전 책가방을 싸놓고 기다리는 학생처럼....!! 딱 그런 기분이다.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희열과 무거운 옷을 벗어놓은 것 같은 편안함이 교차한다. 출판 기념회를 마치며 현수막을 걷는데 회원이 다가와" 홀가분하고 아쉽고 그렇지? " 씩~~~ 웃으며 "앞에 기분에 도취되어 뒤에 것은 글쎄입니다."라고 했다. 딸 시집보내는 것도 아닌데 아쉬울게 뭐가 있을까? 나는 무엇인가 놓..

스며들다

오늘 아침 편지로 온 글이다. "부드러운 것은 언제나 강하다"는...!! 실제 전 세계를 움직이는 글로벌리스트들이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사상이 그렇다. 보이는 손에는 당근을 숨겨둔 손에는 채찍을 들고 양떼몰이를 한다. 존재하나 찾기는 어렵고 없는 것 같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다국적기업을 앞세워 신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자듵... 세계를 하나로 움직이는 세력 그들이 두는 체스게임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국가로 사회로 이웃으로 스며드는 존재...!! 그들이야 말로 그런 존재가 아닐까? 《"부드러운 것은 언제나 강하다"》 "나무 막대기처럼 딱딱한 것은 부러지지 쉽고 바위처럼 굳고 단단한 것은 깨지기 쉽다. 오히려 물처럼 부드러운 것은 쇠망치로도 깨트릴 수 없다. 부드러운 것은 소리 없이 스며든..

일요일

비가 올 듯 하늘이 무겁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도 이파리를 절반은 내려놓고 꼭대기는 엉성하다. 지난밤에 만든 도토리묵을 들고 어머니댁으로...!! 치아보철을 한 뒤로 어머니는 묵을 좋아하신다. 비린 것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채식주의자 어머니를 모시고 순두부 집을 가려다가 남편의 주장으로 낚시갈치조림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어머니는 돌솥밥 누룽지만으로 점을 찍고 몇 번이나 잘 먹었다고 한다. 으슬으슬 춥다며 단풍구경도 싫다는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로컬푸드를 들러 집으로 왔다. 후다닥 일주일 반찬 만들기 돌입..!! 버섯 조림과 카레, 콩자반을 완성했다. 맛있는 거 사 준다는 남편을 따라 저녁은 이탈리아 레스토랑 '마노'에서 안심 스테이크와 와인을 마셨다. 알딸딸하니 기분 좋..

검단동가을

식탁 위에 놓인 회색빛 시집 오래전에 시를 배우러 두어 달 다녔던 가창 팔수식당 2층에서 만난 박윤배 시인의 시집이다. 시집[알약]을 넘기다가 눈에 걸린 페이지를 펼쳤다. 《검단동가을》 붉나무 둥치를 모서리 많은 바람이 툭툭 차서 애꿎게 쓸려 다니는 마른 잎의 행간 눈 기다리는 마음은 비좁다. 흰 길 이리저리 남기는 전투기들 바스 기다리는 변방 하늘을 날아도 아무 각정 없다는 듯, 금 간 아파트 담장 아래 포장마차 바퀴는 고정되어 있다. 계절에 안 어울리게 펄럭이는 꽃무늬 치마 둥근 허리 접고 앉은 젊은 여자 간장에 어묵 오래오래 담그는데 함부로 바퀴 굴리지 않는 포장마차 주인 그녀도 얼마 후 표정은 닮아있다. 몇 해 전인가 장맛비로 불어난 강물에 아이를 고무공처럼 쓸려 보냈다는 그 여자 한 방향으로 쓸..

자만심

요즘 아무리 자기 PR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 이것만은 금물이다. 바로 자만심...!! 마침 도종환시인의 글이 마음을 꿰뚫는 것 같아 오늘 나의 티스토리로 옮겨왔다. 《지혜를 주는 나무》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게 잘 자란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잘나고 큰 나무는 제 치레하느라 오히려 좋은 열매를 갖지 못한다는 것을 한 군데쯤 부러졌거나 가지를 친 나무에 또는 못나고 볼품없이 자란 나무에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이웃 나무가 자라는 것을 가로막고 햇빛과 바람을 독차지해서 동무 나무가 꽃피고 열매 맺는 것을 훼방한다는 것을 그래서 뽑거나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찌 사람 사는 일이 나무가 자라는 것과 꼭 같을까마는 매사에 자만..

구두

아침 5시 40분 수영장 출입현관에 벗어 놓은 구두 한 켤레 이 구두의 주인은 누구일까? 어린 시절 이종사촌 언니가 신고 온 뾰족한 뒷굽이 달린 빼딱 구두를 몰래 신어본 기억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도 나는 거의 굽과 거리가 먼 랜드로바를 신었다. 신혼여행 갔을 때 하이힐을 신고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이 다 깨진 기억뿐이다. 나의 58년 중 단 한 번도 신어 본 적 없고 눈길조차 준 적 없는 예사롭지 않은 스타일이다. 신발장이 있는데도 늘 현관에 벗어놓은 이 신발 주인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

아침풍경 2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줌마 한분이 목욕바구니를 들고 돌아서 있다. 베개자국이 그대로 있는 짧은 파마머리가 부스스하다. 앞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살아온 세월만큼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고 있는 것 같다. 휘어진 한 쪽다리가 많이 불편한지 억지 걸음을 옮긴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려고 아침 일찍 나오신 건가? 문득 사람은 나이 들어 죽는 게 아니라 세월의 무게에 눌려서 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다. 처음 들어올 때 앞서 걷던 걸음의 주인공이 꽃무늬 수영복을 갈아입은걸 보니 그제야 사람이 보였다. 우리 반에서 2번째 수영 잘하는 회원이라는 것을.... 수영장에서 만난 사람은 수영복을 입어야 알아본다더니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닌 듯하다.

건강검진

오늘 건강검진 유랑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 KMI의학연구소 대구 중구 중앙대로 66길 20에 있다. 날짜를 예약하고 오전 8시 이후로 아무 때나 와도 된다고 했다. 얼마나 손님이 없었으면 아무 때나 오라고 하는 걸까? 내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의심스러웠다. 물도 먹지 말고 오라는 금식 8시간을 준수하여 8시 넘자마자 검진을 받으러 갔다. 엘리베이터에 내리자마자 예약하셨냐며 물어보는 안내원이 기다렸다. 일반 병원의 무뚝뚝한 간호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접수부터 완료까지 검진대상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약 50여 명의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검사하는 과정마다 친절이 몸에 배어있어 검진자의 마음도 편안하다. 검진시설도 훌륭하고 시스템이나 직원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제 오늘내일...

아침풍경

아침 5시 30분 수영장으로.. 물속에서 한참을 첨벙거렸더니 온몸이 나른하다. 집으로 돌아와 꽃 화분에 물을 주고 낙엽을 쓸었다. 산책 다녀온 털 달린 아들 나로. 황태포로 입막음을 해놓고 몸을 닦아 주었다. 청소기 돌린 후 나로의 아침밥을 주고 안마의자에 앉은 모처럼 나만의 시간이다. 가을영상속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을 들으니 마음이 평온하다. 점점 눈꺼풀이 감길락 말락 하는 걸 보니 빨리 일어서야겠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려서 사무실로 가야 한다. 이렇게 멋진 가을날.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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