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 재미 더하기

묵화

최포근 2025. 12. 19. 12:37
728x90


이삭님의 티스토리에서
묵화를 읽고
오래전에 작고하신
우리 할머니와 애완소 누렁이가 생각났다.

묵화(墨畵)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참,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제의 미학이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찬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 시지요. 하루 종일 밭일인가 논일을 하고 서로가 위로를 주고받는 풍경이 그지없이 따뜻하고 가족애를 느끼게 합니다. 소가 어떻게 가족이냐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잇을 듯합니다. 우리의 심성에는 벌써 서구적인 발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는 당당한 가족이었지요.

할머니와 소의 정담이 느껴지는 풍경이 곱습니다. 혼자 사는 할머니일지도 모르지요. 아들딸은 도시로 가고 혼자 남아서는 농사를 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의지할 곳이라곤 없는 할머니가 하루 종일 소와 일을 하고 들어와서는 내 몸이 이만큼 고단한데 너는 또 얼마나 고단하겠느냐며 쓰다듬는 것이지요.

소는 가족이지요. <대지>를 쓴 미국의 펄벅 여사가 흔히 한국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보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소를 몰고 가면서 농부는 지게에 짐을 지고 가는 풍경’을 보고 그랬답니다. 소달구지는 비어있으니 농부도 소달구지에 올라타고 짐도 그곳에 실으면 그만인데 소를 생각해서 짐을 실은 지게를 지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 한국의 마음이고 동양의 표정이었지요. 자연과 사람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반자라는 인식이 마음에 깔려 있지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은 풍경이지요.

이 <묵화>라는 시는 김종삼 시인이 중광 스님의 심우도(尋牛圖)를 보고 썼다고도 하더군요. 신경림 시인은 이중섭의 형과 친분이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이중섭의 <소>라는 작품을 보고 쓴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확인할 길이 없어 아쉬웠지요.

이 시를 보면 이중섭의 거친 붓놀림으로 그려진 소보다는 제목 그대로 동양적인 여백이 있는 묵화라는 동양화가 연상됩니다. 묵향이 스며든 맛이 들게 하는 시입니다. 감정이 통하는 감정이입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지요. 시는 설명이 없이 이루어지는 공감의 영역이거든요. 시가 설명되어지면 그 순간 산문이 됩니다.

김종삼 시인은 후배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50년대 시인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의 하나입니다.

기행으로도 널리 알려진 김종삼 시인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소풍에 동행한 일이 있었답니다. 점심을 먹고 났는데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딸은 한참 찾던 끝에 언덕 뒤에서 큰 돌을 가슴에 얹어 놓고 잠이 든 아버지를 발견했답니다. 딸은 놀라서 "아버지, 왜 그래?"하고 물었지요. "응,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그래." 이것이 김종삼 시인의 대답이었지요.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시인의 권리거든요. 그래야만 꿈을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수 있으니 마다할 일이 아니지요.

이 시를 평한 한혜리 시인의 글을 인용해 봅니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 것에 익숙해지기 전, 우리네 농촌에서 장정 몇의 몫을 하며 논을 갈고 밭을 갈고 무거운 짐을 실어 날랐던 것은 '소'였다. '소'는 가축이기 이전에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던 당당한 식구였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물을 먹는 소의 목덜미에 얹혀진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애썼다고, 고맙다고, 한없는 자애의 손길로 소잔등을 쓰다듬는다. 순하디 순한 소의 눈망울에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비쳐들면, 적막한 하루를 함께 살아낸 피붙이의 교감으로 연기 피어오르는 저녁답의 하늘을 향해 소도 '음~메'하고 화답한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다. 절창이다.

함께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내 일을 덜어주어서 고맙다고,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와 아마 밥을 준비해야할 시간임을 알 수 있지요. 소죽부터 끓여서는 오늘 제일 고생한 건 소, 너라면서 소잔등에 얹혀지는 손이 따뜻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공존의 시골 풍경은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거였습니다. 어디 이런 시를 서양인에게서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어림없지요. 우리는 참말로 행복한 사람들이지요. 이러한 시인을 가진 것도 그렇고 이러한 시를 읽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시인 하나가 태어나면 도적놈 하나가 줄어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종삼 시인 같은 시인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김종삼 시인은 1921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1984년 이 세상을 떠났지요. 시인은 가난은 천명으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인데 그 이유는 시가 부자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동양의 가치는 자연과 더불어 순명, 즉 세상의 흐름에 삶을 맞기고, 바람을 피하지 않고 바람 속으로 들어가 인생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지요. 인생의 긴 강가에 고운 꽃이 피면 고운 꽃이 피어서 고맙고, 지는 꽃이 피면 지는 꽃이 아쉬워하면서 걸어가는 것이지요.

김종삼시인은 음악적 리듬과 회화적 형상화를 중시하는 시인이었지요. 이 한 편의 시를 읽기만 해도 한 폭의 따끈따끈한 인정이 느껴지는 그림이 완성되거든요.

고전적 절제의 태도가 보입니다. 그것은 단순미라는 최고의 덕목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장인이 아니고서는 체득할 수 없는 세계거든요.

현실을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만 동양적 미학과 단순미를 가꾸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묵화라는 작품이 평화스러움을 미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이 거리 때문이기도 하지요. 진정 우리의 체험을 주조로 한 풍경임에도 아득히 먼 환상적인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은 동양적인 공감과 관조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관조는 객관의 절정이기도 하거든요. 주관 속에서는 관조라는 용어가 발을 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에 대한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하지요.

대한민국문학상 수상통보를 그에게 전하자, 그는 계속 수상하기를 사양하였다. 농담이라며 아예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가까스로 수상을 허락받자, 이번엔 시상식에의 불참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부끄러워 그런다는 그를 달래서 시상식을 마쳤다.

겸양은 너그러운 사람에게서 나오는 미덕임에 틀림없습니다. 늙은 나이에도 부끄럼을 타는 그는 분명 시인이었지요. 이 시대에는 그런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겠지요.

시인은 외로운 존재지요. 남의 아픔을, 남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인은 좋은 시를 쓸 수 없지요. 공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둠의 끝자락을 헤치고 나온 아침햇살처럼 빛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빛을 만나는 기쁨이 행복인 게지요. 동양화 한 폭을 감상한 기분의 여운이 오래 남아 또한 행복하고요.
[네이버 지식인 퍼옴]

                 [이중섭 (1916~1956) ]

'일상속 재미 더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주기  (47) 2025.12.21
  (40) 2025.12.20
가시  (55) 2025.12.18
피에르 아드리앙 솔리어  (54) 2025.12.17
무지  (79) 202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