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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에 놓인 회색빛 시집
오래전에
시를 배우러 두어 달
다녔던 가창 팔수식당 2층에서
만난 박윤배 시인의 시집이다.
시집[알약]을 넘기다가
눈에 걸린 <검단동가을> 페이지를 펼쳤다.
《검단동가을》
붉나무 둥치를 모서리 많은 바람이 툭툭 차서 애꿎게 쓸려 다니는 마른 잎의 행간
눈 기다리는 마음은 비좁다.
흰 길 이리저리 남기는 전투기들
바스 기다리는 변방 하늘을 날아도
아무 각정 없다는 듯, 금 간 아파트 담장 아래
포장마차 바퀴는 고정되어 있다.
계절에 안 어울리게 펄럭이는 꽃무늬 치마
둥근 허리 접고 앉은 젊은 여자
간장에 어묵 오래오래 담그는데
함부로 바퀴 굴리지 않는 포장마차 주인
그녀도 얼마 후 표정은 닮아있다.
몇 해 전인가 장맛비로 불어난 강물에
아이를 고무공처럼 쓸려 보냈다는 그 여자
한 방향으로 쓸어 넘긴 머리는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인 듯 흐느적거렸다.
슬픔에 흰머리핀 꽂아주고 날아가는 전투기에
퉁퉁 불은 어묵이 이유 없이 슬퍼
금호강 간장 종지 속 가을은
팔 할의 썰린 청양고추가 채우고 있다.
ㅡ박윤배ㅡ
